대한민국이 정당정치 국가라는 걸 고려하면 이명박이 최악의 대통령 후보는 아니다. 적어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다면 수구 정계인사들의 권력 판도는 상당 부분 뒤집힐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인데 양극화 심화로 말미암아 서민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리라 생각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명박 지지자들의 보편적 지지 근거와 반대의 이유로 이명박을 긍정한다. 이명박이 선출된다면 정치적으로 진보하고 경제적으로 퇴보하는 5년이 될 듯하다.
나는 이 상황을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와 비교해서 생각하고 싶다.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건 해방 이후였지만 실제로 민주주의라 부를만한 시간은 고작 최근 20년이다. 시장경제는 더욱 늦다. 우리가 본격적인 시장경제를 체감하기 시작한 시기는 IMF 전후라고 볼 수 있고 그나마도 투쟁과 쟁취의 역사는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타이틀에 비해 빈약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보통 자본주의라 불리는) 도입의 한참 선배격인 서구에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과 보완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사실 시장경제의 속성인 권력 집중화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아이가 태어나 여섯 살이 되면 일터로 나가고 20대에 이미 노인처럼 늙어버리는 노동자의 삶에서 극단적인 시장경제가 갖는 양극화의 바닥을 봤다. 그리고 양극화의 끝은 사회의 몰락이라는 사실도 경험했다. 그들의 경험을 이해하면 '전반적으로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이 인문, 사회 과목에 높은 점수를 보이나 수학에서는 가정의 경제력에 따른 편차가 크지 않다.'라는 통계 결과에 따라 대학 입시에 수학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서구인들의 결벽증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겐 이 정도의 역사적 경험이 없다. 따라서 사회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란 개개인에게 별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국가가 지닌 하나의 도덕적 책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너도나도 먹고살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도덕은 개나 주라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가진 자가 내놓자!'라는 분배정책 혹은 사회 투자 정책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사회 발전 정책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무리도 아니다.
정동영이 선출되면 진보는 분열하고 수구 결집은 강해질 것이기에 국정 운영은 지난 5년보다 못할 듯하다. 이회창이 된다면 정치나 경제나 퇴보할 듯하니 이건 최악이다. 그러니 수구 정치인 물갈이라도 건지고 시장경제 적극도입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시연해줄 이명박이 최악은 면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역사적 경험이 유전자에 각인되지 않았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상상력도 없다면 몸으로 때워야 한다. 이명박은 다수 서민에게 몸으로 때우는 경험을 제공할 최고의 후보다.
이 글은 우울하다. 선거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이따위 글이나 쓰는 나 자신은 패배주의자인지 스스로 질문도 던져본다. 그러나 이 글에 담긴 생각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믿는다. 나는 우리의 경험이 가져올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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