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이런 씨발!

막바지에 이르러 절로 욕지거리가 나왔어요. 옛 기억이 떠올라서요.



[국내도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은이), 정영목 (옮긴이) | 청미래 | 2007년 8월

이 책은 조금 독특합니다. 사랑을 서술하는데 플라톤, 칸트, 니체 등 온갖 철학자를 인용합니다. 어려운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사랑과 같은 보편적인 경험을 예로 드는 게 보통인데 이 책은 반대의 구성을 취하네요. 그래서 조금은 낯 간지럽기도 합니다. 지적 허영이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사랑에는 보편적이라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요. 이 책만 해도 그렇습니다. 남녀가 만나고 연애하고 이별하고 다시 다른 상대와 만나는 뻔한 이야기인데 왜 이게 재미있을까요. 단지 공감 때문에요? 그건 아닐 겁니다. 각자에게는 너무나 특수해서 보편이란 영역에 잡아둘 수 없는 게 사랑일 겁니다. 항상 새롭고 두근대죠.

사랑과 이별에서 우리는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똑똑합니다. 몰라서 못 하는 것보다 알아도 못 하는 걸로 가득한 게 연애죠. 그래서 이 책에서 인용하는 철학들은 역설입니다. 세상의 온갖 이치에 통달해도 원하는 연애를 할 수는 없을 거에요.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연애가 아니죠. 예측을 벗어날 때 만나는, 놀라울 정도로 짜릿하고 당황스런 감정을 거치지 않은 연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연애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별을 전제하기 때문이겠죠. 만나고 사귀고 쓰다듬고 할퀴고 헤어지는 과정은 필연인 동시에 우연입니다. 언제든 시작할 수도 끝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결정권을 상대에게 넘겨 왜소해진 내가 느껴지기도 하고 자신의 바닥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감정 하나하나에 이유를 들이댑니다. 분석하고 해체하려 합니다. 이렇게 머리를 고생시키며 연애하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죠. 물론 이건 소설이니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그게 아닌데' 하면서 쫓아가면 됩니다. 사랑과 이별의 경험이 있고 철학에 대해 약간의 관심을 지녔다면 재미있게 읽을 소설이에요. 제 경우에는 이별 후에 정신분석 서적을 뒤적인 경험까지 일치해서인지 남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죠.

아쉬운 건 이 책을 일 년 전에 읽지 않았다는 겁니다. 타이밍이 살짝 어긋났군요. 그때 읽었으면 모세가 십계를 치켜든 자세로 이 책을 한참 우러러봤을 텐데요. 이런 책은 비판적으로 읽고 싶지 않았어요.

책의 막바지, 이별의 시점에 이르러 욕지거리가 나올 때, 사실 제 입가는 슬며시 올라갔습니다. 그 순간에는 미칠듯하지만, 시간이 지나 받아들이면 추억이 되지요. 잠시 과거의 내가 되어 스스로 어깨를 토닥이며 '그게 연애야.'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 순간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멋진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겠죠.

하지만, 중요한 건, 이별을 반복한다고 아픔에 둔감해지리라는 기대는 없다는 점입니다.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에요. 상처가 두려워 나를 던지지 못하는 사랑이라면 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ps.
많은 여성은 이별 후에 헤어스타일을 바꾸곤 합니다. 예전엔 그걸 기분전환 정도로 여겼는데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헤어스타일을 바꾸면 한동안 어색하지요. 긴 머리를 짧게 자르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상실감도 얻습니다. 하지만, 몇 주 후에는 익숙해지고 예전보다 나아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건 이별 후에 흐르는 시간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모방하고자 하는 행위일지도 몰라요. 물론, 마초 남성의 머리에서 나온 상상일 따름이니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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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데없이낙타를 2009/09/08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 내 머리 속에 지우개를 보면, 손예진이 이별한 뒤 머리를 자르는 장면이 나와요.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다시 이별 전만큼 머리가 자랐을 때, 다른 사람과 다시 사랑에 빠지며 영화는 시작됩니다. 영화는 구렸지만, 도입 표현 방법이 참 좋구나, 싶었어요. 마음이 변헀을 때,(정말 이별하게 됐을 때) 머리를 바꿨던 거 같아요. 과거와 단절을 의미로요.
    저 책 읽다말았는데 포스팅 보니 제대로 읽어보고 싶네요 ㅎㅎ

    • BlogIcon Woong 2009/09/08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손예진이 알츠하이머에 걸리는 영화던가요. 예전에 케이블티비로 띄엄띄엄 본 기억이 납니다.
      영화 내용은 그렇지 않았던 듯하지만, 지우개란 의미가 과거에 대한 단절을 넘어 망각을 연상케 하네요.
      단절이나 망각보다는 반복이 좋아요. 알면서도 다시 시작하게 하는, 항거할 수 없는, 오직 즐겨야 하는 반복입니다. ^^;

  2. BlogIcon pb 2009/11/01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온갖 철학자들을 인용했어도 이렇게 알기 쉽게 읽히는 책은 드물어서 꽤 좋았던 책입니다.


    하지만 역시 실전에서 사랑은 이론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