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서로 허락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니까 각자 다른 사람과 우연히 만나 사랑을 할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당시에 이 조건으로 자신들이 남녀관계 속에서 어떤 종류의 홍역을 치룰 것인가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은 이 조건 때문에 계약결혼 생활 가운데 수많은 위기를 겪으며, 뭇사람들에게서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된다.

둘째,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사르트르는 이 조건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조건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셋째,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작품이 독자들의 호평을 받아 생활에 지장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양할 식구들이 많았다. 그 결과 경제상황이 악화되었을 때는 이 세 번째 조건 역시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그러나 위의 세 조건 가운데 가장 문제가 덜 되는 조건이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p. 18


6월 7일, 하늘은 맑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한창인 청계광장 구석에서 얇은 책을 꺼내 들었다. 적당한 구름이 책읽기에 좋은 조명을 만들었다.


"남녀가 하나 되어 가정을 꾸리는 행위"라는 문장은 아름답지만 거북하다. '하나'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구속이며 구속이 수반되는 '하나 되기'는 폭력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소유욕과 구속 그리고 폭력도 결국 하나다.

결혼이란 제도, 그리고 가정이란 공동체의 당위성에 질문을 던진 두 남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결혼이란 상호 독점의 다른 표현일뿐'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해석도 부정한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은 서로 다른 개성을 인정하며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다.'라는 이론을 내놓았다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인생에 걸쳐 실천의지를 뿜어냈다.

'계약결혼'은 인류에게 하나의 실험이며 과정이 녹아든 그들의 글은 사상과 문학이기에 앞서 보고서다. 그것도 원숭이를 쿡쿡 찌른 스키너의 심리 실험 따위는 애교로 만드는 급진적인 보고서다. 그들의 솔직함은 서로를 단련했고 펜 앞에 벌거벗을 때마다 더욱 자유로운 인간으로 변해갔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시청으로 걸었다. 지난 밤의 술내음과 대화가 생생하고 강렬하게 떠올랐다.
대부분 생각한 질문과 답변들. 그런데 막바지에 이르러 자의 반 타의 반 내던져진 여렴풋한 질문 하나.
발걸음과 함께 그 질문을 구체화했다.

"
나는 매혹과 사랑과 구속과 자유의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는가?"

언제나처럼, 책을 읽어도 답은 없다. 답은커녕 이제는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지만 진정한 자유는 무덤 속에서 찾을 수 있을 뿐이다."라는 문장도 애매어의 오류로 무시할 수 없는, 더욱 모호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 골치 아픈 질문을 선사한 멋진 분께 정중하게 소개하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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