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추판다와 이택광의 다툼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아이추판다: 하나면 끝? 매우 적은 표본에 기반한 라캉주의식 글쓰기 (http://nullmodel.egloos.com/2145759)
아이추판다: 한국의 라캉주의자들 (http://nullmodel.egloos.com/2224786)
이택광: 라캉에 대한 비판? (http://wallflower.egloos.com/2248984)
아이추판다: 세상에는 현명한 사람이 바보들보다 많다 (http://nullmodel.egloos.com/2268507)
내게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도 흥미롭고 라캉이 주장하는 타자의 욕망도 짜릿하다. 그쪽이 세밀한 감정을 분석하고 설명하기 적합하기 때문이다. (적합하다는 표현보다는 선호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내 연애감정을 어떻게 진화생물학 따위로 설명하느냐고. 진화생물학은 그럴듯하지만 번식욕에 지배당하는 익명의 A씨나 B씨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지 나는 아니라고. 나는 숭고하니까.)
라캉 논쟁은 꽤 오래됐고 형태는 조금씩 변화하지만, 과학이라는 권위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는 점은 이번 논쟁에서도 변함없다. (누군가 이걸 밥그릇 투쟁이라 표현한 기억이 난다.) 그까짓 거 포기하면 어떻다고 부여잡으려는 이택광의 자존심이 딱하기도 하고 점점 설득력을 상실하는 라캉이란 도구가 아쉽기도 하다.
라캉주의가 망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 한다는 데 있다. 모든 현상을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하려다 보니 끝없는 반론과 맞닥뜨리고 그에 따라 '이건 자명한 거야'라는 식의 종교적 권위를 요구하면서 환원주의가 취하는 무비판적 안일함에 안착한다. 환원주의의 비판은 오직 바깥을 향한다. 라캉주의에서 주장하는 과학은 결국 종교에 가까운데 그것이 타당한지 타당하지 않은지 검증하는 방법으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그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한 수식어로 사용하기 위한 과학이기 때문이다. 결국, 라캉주의자들이 사수하고자 하는 '과학'은 일종의 품질보증 표식으로 보인다. 라캉 식으로 말하면 타자의 욕망이기에 과학을 욕망한다고나 할까. (이런 관점에서라면 '현대의 종교는 과학이다.'라는 표현에 동의한다.)
이렇듯 종교를 제외하고도 환원주의적 접근 양식을 보이는 걸 주변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희한한 대체의학도 봤고 정통(-.-;) 마르크시즘도 봤다. 그들도 시작은 과학이었을 텐데 구전과 유인물 배포를 통한 계승을 거듭하며 신화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러다 보니 세상에 신뢰할만한 건 의심이지 믿음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이데올로기가 됐든 어느 정도 긍정은 하겠지만, 신뢰는 못하겠다. 이러니 내가 아나키스트일 수밖에. 아나키즘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믿거든.
하지만, 실망하지 마시라. 과학적이지 않으면 어떤가. 세상에는 낭만도 있잖은가. 단, 우기지만 말자고. 그럼 숭고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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