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보관만 하던 SF,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를 잡았습니다.

[국내도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 Mr. Know 세계문학 26
로저 젤라즈니 (지은이), 김상훈 (옮긴이)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환상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책입니다. 데드창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으며 단편집 전체를 관통하는 코드로 '언어'를 인지하고 무섭게 몰입한 기억이 있는데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서는 '개인의 우주'라는 코드를 발견했어요.
(제가 말하는 '개인의 우주'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 신체를 아우르는 개인의 모든 역사가 포함된 전체를 지칭하고자 선택한 단어가 우주입니다.)

로저 젤라즈니는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를 깊이 고민한 사람이었던 듯해요. 어쩌면 이 질문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또 다른 형태인지도 모릅니다. '어디?'를 배제한 존재라면 존재를 부정한 존재일 테니까요.

SF 소설이니 가능하겠지만 이 단편집에 나온 여러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의 시공간은 휘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인공은 떠돌이나 모험가입니다.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유목민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단지 공간에서만 분리된 게 아닌, 시간으로부터도 분리된 주체들입니다.
거의 모든 단편들이 좋았지만 특히 와 닿던 건 '폭풍의 이 순간'이었어요. 시간과 공간은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기에 상상하기 어려운, '시공간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의 심리'를 그린 이야기지요.

생각해보면 이는 미래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과거와 비교할 때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공간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습니다. 일하기 위한 공간, 자기 위한 공간, 먹기 위한 공간은 있을지언정 삶의 공간으로 부를만한 건 없습니다. 시간으로부터 분리되는 것도 시간 문제일지 모르지요.

일찍이 폴 비릴리오는 기술의 진보에 따라 공간을 박탈당한 인간이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했는지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시간과 미디어 등 주어진 다른 요소를 부여잡으며 점점 허무주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음을 설명한 비릴리오의 이론에 공감하기에 이 단편이 달리 보였을 수도 있겠네요.

'폭풍의 이 순간'을 좀 더 언급하지요. 이 단편은 냉동 수면 상태로 수백 광년 떨어진 별들을 돌아다니며 사는 자의 이야기입니다, 육체적인 나이는 30대 중반이지만 수면 기간을 포함하면 수백 살에 달합니다. 시공간으로부터 분리된 주인공이 지긋지긋한 폭풍이 이어지던 그 별에서 잠시나마 마음을 정착할 수 있었던 건 '관계' 덕분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랑이었지요.
혹시 읽겠다고 마음 먹은 분들께는 결론을 이야기해서 미안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마음의 정착지, '관계'마저 잃고 다른 별로 떠납니다. 저는 이제 질문을 떠안습니다. 이마저도 실존과 영원회귀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된 나만으로 존재한다는 게 가능할까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자신 없습니다. 해결 불가능한 과제일지도 모르지요.

SF란 장르소설에서 데드 창의 접근이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면 젤라즈니는 문학적이고 환상적입니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고뇌가 이어지는 그의 글을 통해 인간 본질을 또 다른 방향에서 사유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올 상반기 안에 젤라즈니의 장편도 하나 읽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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